수강생 실습기사

당신의 아파트 (1기 김도연)

202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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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파트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화장실 너머로 들리는 당신의 노랫소리. 그 옆으로 첨벙첨벙 손빨래하는 소리도 들린다. 흐르는 물소리는 반주에 가까웠다. 집안일을 할 때면 당신이 늘 첫 번째로 부르던 가요, 80년대에 유행하던 윤수일의 ‘아파트’. 그 노랫말은 당신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당신은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빳빳하게 다린 와이셔츠와 교복 두 벌을 든 채 매일 아침 세 사람을 기다렸다. 아침이면 식탁 한쪽에서 남편이 밥을 다 먹기를 기다리던 모습. 밥보다 잠이 우선인 사춘기 아이 둘에게 사과나 감 같은 과일을 든 채 “이거라도 먹고 가라”라며 현관 앞에 서 있던 모습. 점심이면 하교하는 딸을 기다리고, 저녁이면 야자를 끝낸 아들과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렸다. “엄마는 너희가 다 클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엄마는 왜 아빠처럼 밖에서 일하지 않냐는, 어린 날 나의 물음에 대한 당신의 대답이었다.

 

당신의 주 무대는 아파트였다. 30평이 조금 넘는 아파트에서 당신은 하루 대부분을 보냈다. 당신 삶의 잃어버린 5년이기도 했다. 몸이 불편한 이들을 돌보던 일터에서의 당신은 사라지고, 아파트 안에서의 당신만 남았을 때. 만나는 이는 평일 낮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 돌보던, 처지가 비슷한 이들이 전부였다. 익숙했던 컴퓨터는 곧장 불편해졌다. 예전과 달리 타자가 느려진 당신은 기숙사에서 돌아온 딸에게 타자를 대신 쳐 달라 부탁했다. 당신은 자기가 너무 느린 탓이라며, 투덜대던 고3 막내딸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집안일을 하는 당신 뒷모습 뒤로 노래 후렴구가 들린다. 그로부터 당신이 일터로 돌아가기까지는 2년이 더 흘러야 했다. 매일 밤 안방에는 불이 켜졌다. 방 한쪽에는 컴퓨터 앞 느린 손가락으로 이력서를 쓰던 당신이 있었다. 당신이 만든 두 사람과 당신이 택한 한 사람이 아파트 밖에서 하루를 보낼 동안, 홀로 남겨졌을 당신의 쓸쓸함을 생각한다. 


조선 저널리즘 아카데미 1기

김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