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생 실습기사

코로나와 나 (1기 안준현)

202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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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나


지긋한 악연은 중국 우한에 역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생사를 오간다는 기사에서 시작됐다. “뭐야, 또 중국이야?”라며 가볍게 웃어넘겼다. 해를 넘겨 국내에서 1호 확진자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별일 아니겠지. 언제 왔다가 언제 갔는지 모르는 수많은 전염병처럼 조금 시끄럽다 가볍게 지나가겠지.


스물 두 살짜리 대학생은 철이 없었다. 2주 늦어진 개강과 함께 진행된 온라인 원격 수업은 꽤 편리했다. 일찍 일어날 필요도, 씻을 필요도, 지각 걱정으로 지하철에서 발을 동동 구를 필요도 없었다. 점심 먹으러 밖에 나갈 필요도 없었다. 친구들과 코로나는 코로 나온다는 실없는 농담으로 킬킬, 걸리지만 않으면 장땡, 나만 조심하면 된다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전부였을 뿐이다.


금방 끝날 것이란 생각은 틀렸다. 졸업이 1년쯤 남은 대학 생활을, 20대 초반의 시간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사람들과의 만남은 끊어졌고 온라인 수업은 수업 같지 않았다. 이게 대학 생활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정부의 방역 정책은 겁을 주려고 할 뿐 실효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열린 감옥의 마스크를 쓴 죄수 신세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2차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말, 저녁을 같이 먹었던 선배가 감염되면서 함께 있었던 사람이란 이유로 격리 대상자가 됐다. 하필 같은 시기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사경을 헤매셨다. 열흘의 격리가 끝나 뵐 수 있게 되기 하루 전날, 할아버지는 끝내 돌아가셨다. 장례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못난 장손을 용서하세요. 그렇게 영정에 절을 올렸다.


장례 3일 차, 선산에 묻히는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보며 오열했다. 할아버지와 헤어지는 슬픔, 자가격리의 억울함, 그리고 코로나의 공포가 뒤섞였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잠을 청했다. 죽은 듯이 자며 눈물을 멈추고 싶었다. 누가 울면 후련해진다고 했나. 오히려 분하고 화가 났다. 코로나는 나 혼자서도 이길 수 있다고, 나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한 철없는 모습에서 벗어나 가족, 친구들과 함께 이겨내겠다고 생각했다.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울지 않기로, 전염병 따위에 무너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기로 다짐했다.


코로나의 끝이 보인다. 악연의 끈이 끊긴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코로나 종식이 선언될 때는 기쁨의 눈물을 흘려도 좋을 것 같다.



조선 저널리즘 아카데미 1기

 안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