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의 정치적 의견 표명, 사법부 신뢰 깨는 자멸의 길(3기 남병진)

202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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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의 정치적 의견 표명, 사법부 신뢰 깨는 자멸의 길

 

지난 8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징역 6개월 실형이 선고된 후, 담당 판사의 정치적 편향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재판을 맡은 박병곤 판사가 오랫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여러 글이 진보적 성향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202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영선 당시 민주당 후보가 패배한 것을 두고, 박 판사는 “피는 흘릴지언정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며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했다. 이러한 판사의 정치적 의견 표명은 사법의 독립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자멸의 길이다.

재판의 공정성을 구태여 거론하지 않아도 법관의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은 진리와 다름없다. 법관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가 내리는 판결을 누가 납득하겠는가. 박 판사가 서울중앙지법에 배치된 후 ‘친민주당’ 성향의 글을 스스로 지운 건, 본인도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한 셈이다. 또한 박 판사가 그간 담당한 명예훼손 재판들 중 실형을 선고한 경우는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판결이 최초라고 한다. 이번 판결에 박 판사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수 없다.

판사 역시 한 개인으로, 표현의 자유를 가졌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법복을 입는’ 개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행정부와 관료가 부패했을 때 국민이 기댈 수 있는 건 사법부뿐이다. 많은 국정 현안들이 정쟁의 대상이 돼 입법부가 제 기능을 충분히 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지금, 사법부는 그 독립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힘써야 한다. 박 판사와 같이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며 재판의 영역에 정치를 들여서는 안 된다. 법관이 아닌 시민으로서의 견해 표명일지라도, 자신이 내린 판결에 대한 신뢰도를 의심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과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법관인 만큼, 높은 윤리적 잣대 적용은 불가피하다.

이에 더해 판사의 표현의 자유에 관한 기준을 좀더 명징하게 제도화할 필요도 있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SNS상에서 사회적‧정치적 의견 표명을 하는 경우 자기 절제와 균형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품위를 유지해야 하고,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를 야기할 수 있는 외관을 만들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권고 규정인 만큼 이것을 어겨도 징계할 근거가 없다. 권고가 아니라 강제성 있는 규정으로 제정해 의심의 균열을 봉합해야 한다. 사법부의 실수는 ‘병가지상사’ 따위의 늘 있는 일로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 재판에서 공정성과 신뢰를 잃는 것은 법관의 실패이자 민주주의의 대패(大敗)다.


조선 저널리즘 아카데미 3기

남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