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생 실습기사

이웃과의 인사가 더는 번거롭지 않은 사회를 위하여(2기 정주원)

2023-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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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매달 저녁 8시면 아파트 주민이 한자리에 모여 인사하고 회의하던 때가 있었다. 불참 시 벌금 4000원이 있을 정도로, 아파트에서 중요한 안건을 다루고 필요한 건의 사항을 공유하는 사실상의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랬던 반상회도 이제는 사라진 옛 문화일 뿐이다. 반상회는 아파트가 생기기 전에 이웃들이 단지별로 모여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의 ‘주민센터’ 개념이었다. 여론 수렴 창구인 현대식 반상회도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있다. 주민 사회에서 꼭 필요한 소통, 만남의 의미를 상징하던 ‘벌금 4000원’도 이제는 없다. 공적 의미가 사라지면서, 이웃 간 따뜻한 정이 오가던 특유의 돈독한 관계도 찾아보기 힘들다. 오죽하면 아버지가 출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인사 나누는 게 어렵다고 하실까.

 

타인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개인주의에 이웃 간 거리감이 생겼다면, ‘내 식구’의 경우는 어떨까. 공동체의 시발점인 가족 사회에서도,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유교적인 집안 덕에 나는 어릴 적부터 가족 행사에 빠지지 않아 왔다. 하지만 이제는 명절에도 차례를 지내거나 함께 밥 먹는 경우가 드물다.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제사 때 참석을 꺼리는 삼촌도 있다. 가족마저 분해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공동체가 점점 해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절 때 가족이 모이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개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사회가 변했고, 그랬던 풍습마저 더는 ‘의무’가 아닌 ‘재량’으로 바뀌고 있다. 만남, 교류가 없는 공동체는 더는 공동체가 아니다. 구성원으로서 함께 소속감을 느끼고 공감대 형성이 가능해야 비로소 온전하다. 공동체 위기가 도래한 이유는, 공동체 정신 실천을 불필요한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웃 간 아침 인사를 나누고, 차례 지내러 산소를 가는 풍경이 어째서 ‘귀찮은 일’일까. 해야 할 필요성이 사라지면, ‘안 하면 좋은 일’이 되는 요즘 사고방식이 무섭다.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데 동의한 한국인 비율이 27%에 불과하다고 한다. ‘빚더미 개발’로 보증금 125억원을 편취한 ‘빌라왕’ 남모씨는 조직적 전세 사기의 실체를 드러냈다. 자발성에 기초한 공동체 문화 회복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는 사회다. 내 가족, 이웃을 믿지 못하면 결국 그 사회도 나에게 믿음을 줄 수 없다. 오늘 출근길에 마주쳤던 이웃과 반갑게 인사부터 나눠 보는 게 어떨까. 이제 더는 ‘안 하면 좋은 일’이 아니다.

 

조선 저널리즘 아카데미 2기

정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