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생 실습기사

키워줘서 고마와요 (1기 이규림)

202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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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줘서 고마워요


중학교 1학년 어버이날을 앞두고 음악 선생님께서 과제를 내셨다. 부모님 앞에서 감사 편지를 낭독하고 노래 ‘어머님 은혜’를 부른 뒤 부모님께 글을 받아 가져오라고 했다.


편지 쓰기는 어렵지 않았다. 매년 어버이날마다 편지로 사랑한다, 미안하다, 감사하다고 되풀이해왔다. 글을 읽는 부모님 반응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니 쑥스럽지 않게 구색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이었다.


다만 엄마 아빠 얼굴을 보면서 편지를 읽고 노래 부르기가 부끄러웠다. 여럿이 모이면 없던 용기도 생길 것 같아 친구 두 명과 상의해 부모님들을 모두 모시고 작은 어버이날 파티를 열기로 했다.


다년 간 경험을 살려 어버이날 편지를 썼다. 첫 줄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마지막 줄이 끝났다. 거실 벽에 어버이날 행사 문구를 붙이고 부모님들을 모셨다. 엄마 아빠는 평소에나 잘하지 유난을 떤다면서도 즐거워하셨다. 친구들이 먼저 부모님께 쓴 편지를 차례로 읽었다. 5분도 안돼서 내 순서가 됐다.


한두 줄 낭독했을 때 전혀 생각지 못한 감정이 느껴졌다.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울음이 목소리를 막았다. 소리 내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한 문장 한 문장에 진심을 담고 있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했던 말이다. 글로 적을 때까지만 해도 숙제를 한다는 생각이었다. 가슴에서 숨을 끌어올려 입 밖으로 뱉으니 엄마 아빠 얼굴만 머리에 가득 찼다.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하는 끝맺음은 축축하게 젖어서 물인지 말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의 눈물을 봤다.


태풍으로 지하주차장에 빗물이 차오르자 어머니는 열네 살 아들을 먼저 내보냈다. 아들은 “키워주셔서 감사해요”라고 했다고 한다. 아들은 끝내 물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영화 속 대사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 말을 뱉어 본 사람은 안다. 생사가 갈리는 찰나에 부모님 은혜를 떠올리며 아들 마음은 끝도 없이 커졌고, 그 마음이 목구멍에 닿아 간신히 소리 냈으리라 짐작해본다.


아들에게는 너무나도 현실적이었을 이 문장을 다시 읊어본다. 올해 내가 스물 두 살이니 중1 이후로 8번을 더 쓴 글이다. 글은 그동안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눈물엔지 빗물엔지 가라앉아 있던 말을 떠 올린다. 마지막이 아니기를 바라며 되뇌어본다.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조선 저널리즘 아카데미 1기

  이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