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끊는 자녀喪 (1기 홍은서)

202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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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끊는 자녀喪


 바티칸 성당의 두꺼운 유리 너머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을 본 적이 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떠안은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숨막힐 만큼 압도적이었다. 인체의 근육은 물론이고 옷주름까지 정교하게 묘사한 예술가의 섬세함을 보고 있자면 자식을 잃은 부모의 비통함마저도 신의 전지전능함 앞에서는 그저 운명의 처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자식의 죽음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어딘가 텅 빈 듯한 느낌도 들었다.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 남부를 휩쓸고 지나간 뒤 어떤 엄마와 아들이 작별한 사연이 사람들을 울렸다. 열 네살 김모 군은 평소 ‘엄마 껌딱지’라고 불릴 만큼 어머니와 각별했다. 김군은 그 날도 빗물이 들어차는 지하 주차장에 혼자 차를 빼러 가는 어머니가 걱정돼 함께 따라 나섰다.


   김군의 어머니는 사고 당시 물이 빠르게 불어나자 어린 아들을 먼저 내보냈고, 김군은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입구를 향해 헤엄쳐 갔다. 아들을 먼저 내보낸 어머니는 배관을 잡고 14시간을 버텨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김군은 결국 그날 밤 숨진 채 발견되었다. 김군의 가족들은 아들의 생사부터 묻는 김군의 어머니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몇 해 전 교통사고로 자녀상을 당한 친구를 조문 가셨던 아버지가 집을 나선 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돌아오셨던 일이 있다. 목 놓아 울지도 못하는 친구의 얼굴을 차마 마주할 수 없어 조의금만 내고 일어나셨단다. 아버지는 조용히 “딸, 길 건널 때 꼭 조심해야 해” 하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훔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날 일에 대해 다시 언급하지 않으셨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슬픔 앞에서는 어떤 말도 보탤 수 없으셨던 것이 아닐까, 하고 감히 추측해 볼 뿐이었다.


   피에타상의 경이로움도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 앞에서는 공허한 울림만을 남길 뿐이다. 자녀를 앞세운 부모의 울음소리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 소리 같다고 한다. 실제로 자녀상의 상주는 부모가 아닌 경우가 더러 있다.


자녀의 마지막으로 보내는 길에서 작별을 고할 힘조차 없는 약한 부모라고, 어른답게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다고 손가락질 할 사람은 없다. 자식 잃은 부모는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이제서야 성모 마리아의 텅 빈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조선 저널리즘 아카데미 1기

홍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