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육하원칙’은 옛날 유물...한국 언론, ‘5I’로 갈아타야 [송의달의 모닝라이브]

20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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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하원칙’은 옛날 유물...한국 언론, ‘5I’로 갈아타야 [송의달의 모닝라이브]

[미디어 프리즘]



송의달 에디터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의 기본으로 육하원칙(六何原則·5W1H)을 꼽습니다. 이 원칙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who/when/where/what/how/why)를 준거로 삼습니다. 기자(記者)들이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할 때도 이 원칙을 대개 적용합니다.

그런데 미국 언론계에서는 ‘5I’가 새로운 원칙으로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5I’는 미첼 스티븐스(Mitchell Stephens·73) 뉴욕대학교 교수가 2014년 4월 발간한 <Beyond News>라는 책에서 제안했습니다.


미첼 스티븐스 교수가 2014년 발간한 <Beyond News>의 한국어 번역판/인터넷 캡처

미첼 스티븐스 교수가 2014년 발간한 <Beyond News>의 한국어 번역판/인터넷 캡처


‘5I’ 원칙은 지적이고(intelligent), 정보가 있고(informed), 해석적이며(interpretive), 통찰적이며(insightful), 깨우쳐준다는(illuminating) 5개로 구성돼 있습니다. 스티븐스 교수는 “전통 언론에서 통용되어 온 5W1H로는 충분치 않다. 5I가 저널리즘의 새로운 전형”이라고 책에서 밝혔습니다.

◇“미디어 환경 급변...사실 전달로는 한계”

“빠듯한 인력으로 지금도 하루하루 힘든데 먼 나라의 한가로운 얘기”라고 항변할 분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 언론이 생존하고 잃어버린 사회적 존경을 회복하려면 ‘5I’ 원칙을 수용해 진일보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5I’ 원칙이 공감을 얻어가는 큰 이유는 미디어 환경 변화입니다. 모든 개인이 기자로 활동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전자(電子)기기와 기술 발달로 국내에도 ‘1인 미디어’와 소형 미디어들이 많아졌습니다.


경제전문 유튜브채널 '삼프로TV'에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가 2021년 12월 말 출연해 말하고 있다. 삼프로TV는 대선 후보마다 1시간30분씩 경제 정책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2022년 1월3일 정오까지 대선 후보 특집 콘텐츠 조회수는 총 930만회에 달했다./삼프로TV 캡처

경제전문 유튜브채널 '삼프로TV'에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가 2021년 12월 말 출연해 말하고 있다. 삼프로TV는 대선 후보마다 1시간30분씩 경제 정책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2022년 1월3일 정오까지 대선 후보 특집 콘텐츠 조회수는 총 930만회에 달했다./삼프로TV 캡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유튜브 채널 ‘삼프로TV_경제의신과함께’ 프로에 출연해 얘기하고 있다. 이 프로의 조회수는 500만회를 넘었다./조선일보DB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유튜브 채널 ‘삼프로TV_경제의신과함께’ 프로에 출연해 얘기하고 있다. 이 프로의 조회수는 500만회를 넘었다./조선일보DB


이들은 어떤 경우에는 전통 미디어 보다 더 빠르고 더 풍부하고 깊은 내용과 시각으로 뉴스 이용자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삼프로 TV’ 처럼 기업형으로 성장한 곳도 있고, 1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한 개인 유튜브 방송이 그렇습니다. 이들은 ‘전문성과 절박함, 스피드’로 무장해 약진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미디어 급변기에 혁신을 주도해야 할 전통 언론사들은 여전히 ‘He said’ ‘She said’식(式)의 단순 사실(事實·fact) 전달에 머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재나 지진, 코로나(Corona) 같은 대형 사건사고나 재난시, 일반인들도 사진과 동영상을 퍼나르고 사실 전달과 현상 진단 같은 일종의 취재 활동을 합니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코로나 관련 기사의 그래픽. <그림 1〉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세포를 납치하는 법(How Coronavirus Hijacks Your Cells), <그림 2〉는 '코로나바이러스 게놈 속으로’ (Inside the Coronavirus Genome)는 제목을 달고 있다. 학술논문에 나올 법한 과학 지식을 과학전문 매체 아닌 <뉴욕타임스〉에 실은 것이다./NYT 웹 캡처

미국 뉴욕타임스의 코로나 관련 기사의 그래픽. <그림 1〉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세포를 납치하는 법(How Coronavirus Hijacks Your Cells), <그림 2〉는 '코로나바이러스 게놈 속으로’ (Inside the Coronavirus Genome)는 제목을 달고 있다. 학술논문에 나올 법한 과학 지식을 과학전문 매체 아닌 <뉴욕타임스〉에 실은 것이다./NYT 웹 캡처



1954년생인 도널드 맥닐 기자는 만67세였던 2021년까지 20년동안 뉴욕타임스(NYT)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UC버클리 수사학(修辭學)과를 우등졸업하고 1970년대 NYT에 입사했다. 90년대 남아공 특파원 시절부터 AIDS, 사스(SARS) 같은 감염병에 관심을 갖고 취재해온 맥닐 기자는 코로나 발발 한 달 반 전부터 경고 기사를 연속 게재했다. 사진은 그의 생각과 활동 등을 담은 NYT의 'Times Insider' 코너 기사/NYT캡처

1954년생인 도널드 맥닐 기자는 만67세였던 2021년까지 20년동안 뉴욕타임스(NYT)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UC버클리 수사학(修辭學)과를 우등졸업하고 1970년대 NYT에 입사했다. 90년대 남아공 특파원 시절부터 AIDS, 사스(SARS) 같은 감염병에 관심을 갖고 취재해온 맥닐 기자는 코로나 발발 한 달 반 전부터 경고 기사를 연속 게재했다. 사진은 그의 생각과 활동 등을 담은 NYT의 'Times Insider' 코너 기사/NYT캡처


이 경우 전통 언론사와 소속 기자들이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심층 분석 기사로 확실히 고급스런 콘텐츠들이 지금보다 많아야 할 것입니다.

◇해석·분석·설명 중시하는 고급 저널리즘

두번째 요인은 뉴스 이용자들의 눈높이와 기대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입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높은 대학 진학률과 사회 전반의 고학력(高學歷) 및 학습사회로의 진화, 다(多)매체로 인한 ‘콘텐츠 홍수’ 시대에 뉴스 이용자들은 기성 언론사들이 공급하는 단순 사실·정보로는 만족 못하고 있습니다.


자발적인 독서 모임과 유무료 독서 클럽들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사진은 2022년 6월 10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에 있는 '최인아책방'에서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가 강의하는 모습/뉴스1

자발적인 독서 모임과 유무료 독서 클럽들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사진은 2022년 6월 10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에 있는 '최인아책방'에서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가 강의하는 모습/뉴스1


이완수 동서대 교수는 “한국의 뉴스이용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뉴스 정보원과 정보를 찾아낸 후 그 이면(裏面)을 캐내서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언론에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을 준다”며 “이용자들의 주목을 많이 받을수록 그 매체의 유료화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말했습니다.

미첼 스티븐스 교수는 “저널리즘의 가치가 쇠퇴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이유는 팩트(사실)에 집착한 나머지 ‘관점과 전망을 보여주는데 실패한’(failures of perspective) 기성 언론사들의 보도 태도 때문”이라며 이렇게 지적합니다.

“객관적인 팩트 전달에 머문 ‘퍼나르기 식(式) 보도’로는 더 이상 언론이 설 땅은 없다. 해석과 분석을 중시하는 ‘지혜의 저널리즘’(Wisdom journalism)이 디지털 저널리즘이 갈 길이다.”


<비욘드 뉴스>의 저자인 미첼 스티븐스(Mitchell Stephens) 미국 뉴욕대학교 아서카터 저널리즘연구소 교수/조선일보DB

<비욘드 뉴스>의 저자인 미첼 스티븐스(Mitchell Stephens) 미국 뉴욕대학교 아서카터 저널리즘연구소 교수/조선일보DB


8년 전 나온 그의 주장은 한국 사회에서도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스티븐스 교수는 저널리즘의 미래, 즉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을 밝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뉴스는 ‘일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새로운 정보’인 반면, 저널리즘은 ‘뉴스를 수집·제시하고, 해석 또는 논평하는 행위이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은 ‘뉴스’ 사업에 뛰어들고 있을 뿐이다. ‘저널리즘’을 업(業)으로 삼는 전문가들의 집단인 언론사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

관건은 언론사(미디어 기업)들이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얼마나 잘 대응하느냐입니다. 공짜 콘텐츠가 넘쳐나고, ‘뉴스’ 상품을 놓고 비언론사들과 경쟁해야 하고, 디지털 사회가 펼쳐지고 있으니, 전통 언론사 입장에선 사방이 온통 ‘위기’로 위축되기 십상입니다. 이에 대한 스티븐스 교수의 조언은 이렇습니다.

“언론사 경영진과 종사자들의 생각과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단순 사실 보도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기자들의 ‘잡 데피니션’(Job definition·직업의 정의)부터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가진 사람, 또는 그런 식견을 가지려 노력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에 상응해 기자 채용 방식과 편집·보도 시스템, 경력 관리, 교육이 모두 달라져야 한다. 목표를 높게 가져야 한다.”


뉴욕타임스 최초의 여성 편집국장과 여성 편집인을 지낸 질 에이브럼슨(Jill Abramson)은 "‘퀄리티 저널리즘’은 ‘분석한다(analyzed)’라는 단어와 함께 시작한다”고 말했다./유튜브 캡처

뉴욕타임스 최초의 여성 편집국장과 여성 편집인을 지낸 질 에이브럼슨(Jill Abramson)은 "‘퀄리티 저널리즘’은 ‘분석한다(analyzed)’라는 단어와 함께 시작한다”고 말했다./유튜브 캡처


스티븐스 교수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저널리즘은 더 많은 연구와 더 많은 지성(知性), 분별력 그리고 독창성을 요구한다”면서 미국 뉴욕타임스(NYT) 사례를 꼽았습니다.

NYT가 특종 건수만 세지 않고 다른 일반 기사들도 경쟁 매체보다 월등한 수준인지를 끊임없이 되묻고, 궁리하며, 혁신하는 것을 눈여겨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자·언론사의 생각, 운영방식 달라져야”

그의 말 대로 새로운 시대에 생존하려면 언론계의 기둥 중 하나인 기자(記者)들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들의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언론사도 운영과 사고방식의 틀을 새로 짤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스티븐스 교수의 진단입니다.

“퀄러티 저널리즘에는 기자의 연차(年次)가 문제되지 않는다. 기자 개인이 ‘포커스드 엑스퍼티즈’(Focused expertise), 즉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자기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기자들이 많아야 한다.”

그는 아날로그 시대에 굳어진 콘텐츠 형식도 새로운 발상으로 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바일에서 분량이 긴 기사가 안 읽힌다는 것은 착각이다. 길어서 안 읽히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이 긴 글이 안 읽힌다.”

미국 언론학자들은 시각과 통찰력, 스토리가 있으며 본문 곳곳에 ‘흥미 요소’를 담은 장문(長文)의 기사(Long-Form journalism)가 디지털 시대에 더 각광받는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진지한 보도(serious reporting)와 장문(long form)의 기사가 흥왕(興旺)하고 잘 소비된다"고 지적한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2014년 9월15일자 기사/인터넷 캡처

"디지털 시대에 진지한 보도(serious reporting)와 장문(long form)의 기사가 흥왕(興旺)하고 잘 소비된다"고 지적한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2014년 9월15일자 기사/인터넷 캡처


한국의 언론계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1년 12월 발간한 <2021 신문산업 실태조사>를 보면 국내 1015개 신문사 가운데 당기 순이익 1억원 미만인 곳이 87.2%이고, 10억원 넘는 곳은 2.8% 뿐입니다. 대다수 언론사가 열악한 마당에, 스티븐스 교수의 주장이 고담준론(高談峻論)인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세계 10위 경제 대국(大國)에 세계 7위 무역 강국(强國), 세계 6위 국방 강국이라는 높아진 우리나라 위상을 유지하고 또 상승하려면, 그에 걸맞는 고급 언론사가 몇 개는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급 언론’ 없이 선진 강대국이 돼 건재(健在)하는 사례는 현대 세계에서 전무(全無)해서입니다.

스티븐스 교수가 엄지척하는 ‘세계적 수준의 기자’들이 우리 언론계에 늘어난다면, 한국 언론의 부흥과 한국 사회의 선진화도 앞당겨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