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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부 기자...한국과 확 다른 세 가지 [송의달 LIVE]

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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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부 기자...한국과 확 다른 세 가지 [송의달 LIVE]

‘워싱턴 언론계의 단장’ 데이비드 브로더 기자
K-저널리즘·K-정치를 향한 탐구[미디어 프리즘]


송의달 에디터

입력 2023.07.25. 07:00업데이트 2023.07.2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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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부 기자의 대부(代父)’, ‘워싱턴 언론계의 단장(the dean of the Washington press corps)’. 이는 데이비드 브로더(David Broder) 워싱턴포스트(WP) 기자 겸 칼럼니스트에 붙은 별명들입니다.


데이비드 브로더가 NBC 방송의 일요일 시사 토론 프로그램인 'Meet the Press'에 출연해 얘기하고 있다. 신문기자인 그는 이 프로그램에 총 401회 출연한 역대 최다(最多) 기록 보유자이다. 시카고대 정치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사내 보직이나 외부 자리를 맡지 않고 평생 정치부 기자 겸 칼럼니스트를 천직(天職) 삼아 일했다./Broder Family 제공

데이비드 브로더가 NBC 방송의 일요일 시사 토론 프로그램인 'Meet the Press'에 출연해 얘기하고 있다. 신문기자인 그는 이 프로그램에 총 401회 출연한 역대 최다(最多) 기록 보유자이다. 시카고대 정치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사내 보직이나 외부 자리를 맡지 않고 평생 정치부 기자 겸 칼럼니스트를 천직(天職) 삼아 일했다./Broder Family 제공


1929년 태어난 그가 2011년 3월 세상을 떠나자, 버락 오바마(Obama)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저널리즘의 진정한 거인이 타계했다는 소식에 우리 부부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고 애도했습니다. 다음달 5일 워싱턴DC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서 조 바이든(Biden) 부통령은 “워싱턴을 악의 없이,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취재한 기자였다”고 말했습니다.

◇60년 넘게 ‘정치부 기자’ 외길 인생

브로더는 세상을 뒤흔드는 ‘특종형 기자’도, 잘 팔리는 책을 많이 낸 ‘저술형 기자’도 아닙니다. 시카고대 정치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60여년 동안 ‘정치’ 분야만을 파고든 기자 가운데 기자입니다. 군 제대후 1953년 지역 주간신문사에 입사해 2년간 일한 뒤 워싱턴DC의 의회(議會) 전문매체인 콩크레셔널 쿼털리(Congressional Quarterly)와 워싱턴 스타(Washington Star)에서 5년씩 근무했습니다.

이어 1965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뉴욕타임스(NYT) 워싱턴지국을 거쳐 1966년 WP에 스카웃돼 2008년 말까지 42년 근속했습니다. 그는 퇴직 후에도 2011년 2월까지 2주에 1번씩 칼럼을 썼습니다. 1990년 ‘워싱토니언(Washingtonian)’이 200개 미국 신문사 오피니언면 책임자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브로더는 ‘최고의 기자, 가장 열심히 일하고 가장 덜 이념적인 기자’(Best Reporter, Hardest Working and Least Ideological)로 꼽혔습니다.


데이비드 브로더가 1987년에 쓴 저서. 책 제목은 '1면 보도의 이면(裏面) : 뉴스 제작에 대한 솔직한 시선'이다.  



데이비드 브로더가 1987년에 쓴 저서. 책 제목은 '1면 보도의 이면(裏面) : 뉴스 제작에 대한 솔직한 시선'이다.


언론인 티모시 크라우즈(Crouse)는 “내일 회사를 그만두고 등사판 인쇄물을 발행하더라도, 브로더는 선거 과정과 다른 기자(記者)들의 의견을 바꿀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는 정치 저널리즘 분야의 고결한 성직자(high priest)이며 가장 존경받는 기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무엇이 남달랐을까요?

1929년 9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브로더는 어렸을 때부터 ‘정치’를 공기처럼 여기며 성장했습니다. 치과 의사인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이 식탁에서 정치를 자주 화제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10세에 성탄절 신문을 친구와 함께 만들기도 했습니다.

시카고대 재학시절 대학신문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한 그는 일찌감치 ‘정치부 기자’를 직업으로 택했습니다. 미 육군에 2년 복무하면서도 신문사에서 일했을 정도입니다. 기자로서 브로더는 1956년부터 2004년 11월까지 13차례 미국 대선(大選)을 취재했고 WP에 4000여편의 칼럼을 썼습니다. 그의 칼럼은 미국 308개 신문에 신디케이트 계약 형태로 게재됐습니다.

미국 NBC방송의 일요시사 대담(對談) 프로그램 ‘Meet the Press’에 1963년 7월 7일부터 사망 직전까지 총 401회 출연했는데, 이는 프로그램 역사상 최다(最多) 기록입니다. 브로더는 기사와 칼럼, 일요일 아침 방송 논평으로 ‘1인 3역’을 소화하면서 자신의 소질과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데이비드 브로더를 비롯한 유능한 기자들을 스카웃해 워싱턴포스트의 중흥을 꾀했던 캐서린 그레이엄(사진 왼쪽) 워싱턴포스트 사주와 벤자민 브래들리 워싱턴포스트 편집인.

데이비드 브로더를 비롯한 유능한 기자들을 스카웃해 워싱턴포스트의 중흥을 꾀했던 캐서린 그레이엄(사진 왼쪽) 워싱턴포스트 사주와 벤자민 브래들리 워싱턴포스트 편집인.



1966년 데이비드 브로더를 워싱턴 포스트(WP)로 스카웃한 벤자민 브래들리 WP 당시 편집국장이 쓴 자서전의 표지. 그는 이 책 279쪽에서 "데이비드 브로더는 당대에 가장 뛰어난 정치 담당 기자(the greatest pure political reporter of his generation)이다"라고 표현했다./Amazon

1966년 데이비드 브로더를 워싱턴 포스트(WP)로 스카웃한 벤자민 브래들리 WP 당시 편집국장이 쓴 자서전의 표지. 그는 이 책 279쪽에서 "데이비드 브로더는 당대에 가장 뛰어난 정치 담당 기자(the greatest pure political reporter of his generation)이다"라고 표현했다./Amazon


◇①매년 16만 km 이동...‘시민’을 직접 만나다

브로더의 가장 큰 특징은 대다수 정치부 기자들과 달리 워싱턴 DC에 갇혀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주(州) 정부는 물론 지역의 시(city)·군(county) 등 주요 지역의 시장, 의회 의장, 공화·민주당 의장 등을 훤하게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통령 또는 중간선거 때마다 중소 도시를 찾아가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브로더는 그래야만 미국 정치의 흐름과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소망을 알 수 있으며, 그 바탕 위에서 기사와 칼럼을 작성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에게는 정치인의 발언이나 인사(人事) 소식을 먼저 쓰는 특종(特種) 보다 유권자(有權者)들의 생각과 목소리를 경청하며 미국 정치의 구조 변화와 흐름을 전달하는 게 더 중요했습니다. 기자는 1999년 6월 초 WP 본사에서 브로더를 만났는데, 그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1999년 11월 12일자 '조선일보 사보(朝鮮日報 社報)'에 실린 데이비드 브로더 인터뷰 기사. 당시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연수 중이던 송의달 기자가 1999년 6월 중순 3일간 워싱턴포스트(WP) 본사에 현장연수의 일환으로 그의 사무실에서 브로더를 대면(對面) 인터뷰했다.

1999년 11월 12일자 '조선일보 사보(朝鮮日報 社報)'에 실린 데이비드 브로더 인터뷰 기사. 당시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연수 중이던 송의달 기자가 1999년 6월 중순 3일간 워싱턴포스트(WP) 본사에 현장연수의 일환으로 그의 사무실에서 브로더를 대면(對面) 인터뷰했다.


“나는 한 달의 절반 정도는 워싱턴 DC 바깥에서 보낸다. 유권자나 후보자가 있는 정치 현장에 있고 싶어서다. 워싱턴에 있을 때는 조찬 겸 인터뷰를 주로 한다. 약속이 없는 날에는 오전 9시쯤 사무실에 나와서 낮에는 연방의회의사당에서 의원이나 보좌관을 만난다. 퇴근은 오후 6시30분쯤 한다. 1999년 5월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 이틀간 출장 갔을 때는 20명의 정치 관련 인물을 만났다. 적어도 매일 2~3명씩 만나고 수시로 전화취재를 한다. 1960년 이후 취재차 이동한 거리를 계산해보니 매년 평균 10만마일(약 16만km) 정도 됐다.”

유권자 집을 찾아가 현관 문을 두드려 사람을 만나며 발품을 파는 취재(old-fashioned shoe-leather reporting)가 브로더의 특기(特技)였습니다. 그는 “선거 때만 되면 전국의 작은 도시를 찾아 모텔과 간이음식점, 찬바람 부는 길거리를 수없이 돌아다녔다. 힘들지만 집집마다 유권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만큼 보람있고 유익한 취재방식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브로더는 70대 중반까지 이런 취재를 계속했습니다. 2004년 7월 미국 공영방송 NPR에서 그가 한 말입니다.


미국 워싱턴DC 내 워싱턴포스트(WP) 본사 건물 앞에 선 데이비드 브로더.

미국 워싱턴DC 내 워싱턴포스트(WP) 본사 건물 앞에 선 데이비드 브로더.


“나이가 들수록 유권자를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게 더 쉬워진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불쌍한 노인이 있나. 그 나이에 문을 두드리고 다니다니…’라며 미안해해서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차(茶)라도 한 잔 하자’며 집 안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겉핥기 전달 않고 표정·동작·심리까지 묘사

1970년 10월 초 WP에 3회 연재한 ‘혼란에 빠진 유권자들(The Troubled Voters)’이라는 기획 기사를 위해 그는 동료 기자 1명과 10개 주(州)를 돌며 200명의 유권자를 만났습니다. 시리즈 마지막 기사에는 13명의 취재원을 모두 실명(實名)으로 등장시켰습니다. 유권자의 발언만 겉핥기로 전하지 않고 표정과 동작, 심리상태 같은 속마음까지 상세하게 묘사했습니다.

매년 서울~부산 거리(400km)를 400번 정도 이동하는 근면함에 과학적인 조사를 결합해 그는 수준높은 기사를 썼습니다. 브로더는 이를 통해 1980년 11월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의 당선과 199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40년 만에 공화당의 연방 상·하원 석권(席捲)을 정확하게 예상했습니다.


1994년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40년 만에 공화당의 승리를 이끈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이 1995년 1월 연방의사당 앞에서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 문서를 들고 연설하고 있다./CNN

1994년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40년 만에 공화당의 승리를 이끈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이 1995년 1월 연방의사당 앞에서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 문서를 들고 연설하고 있다./CNN


그는 미국 정치 보도의 ‘황금률(gold standard)’을 정립한 기자로 평가됩니다. 그의 ‘황금률’은 ‘정치부 기자들이 정치 권력 내부자의, 내부자에 의한, 내부자를 위한 취재를 해서는 안 된다’는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그는 자신부터 황금률을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1988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11개월쯤 앞둔 87년 12월 13일, NBC방송의 ‘Meet the Press’에 공화당의 유력 예비 대선 후보인 조지 H.W. 부시(Bush)가 출연했습니다. 맞은 편에는 데이비드 브로더가 나왔는데, 두 사람은 매우 친한 사이였습니다.

브로더는 그러나 이날 정색하고 “의료보험에 가입 못한 미국인이 몇 명인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지 알고 있나?”라고 날카롭게 물었습니다. 이에 부시는 당황한 나머지 즉답을 못하고 “미국은 세계 최고의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얼버무렸습니다.


정치 명문 부시 가문의 세 부자(父子)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사진 왼쪽부터).

현대 미국의 정치 명문인 부시(Bush) 가문의 세 부자(父子). 사진 왼쪽부터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조선일보DB


◇②파당 속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취재하다

이날 인터뷰는 선거기간 내내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평생 상류층에서 부유하게 산 부시에게 예리한 검증의 칼날을 브로더가 내민 것입니다. 친구와의 우정(友情) 보다 기자로서의 직업정신(職業精神)을 선택하고 거기에 충실했던 그는 1987년 낸 저서 <Behind the Front Page>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나는 취재대상인 정치인들과는 저녁을 함께 하거나 술을 먹는 등의 대접을 평소 피해오고 있다. 20년 동안 사귀어온 공화당 정치인이 대통령 출마 의사를 비쳤을 때, 그가 다소 거만하게 느낄 정도로 나는 ‘더 이상 사적(私的)인 점심이나 긴 대화를 않겠다’고 통고한 적이 있다.”


이는 그의 또다른 황금률인 ‘도당(徒黨) 저널리즘(clique journalism)’에 빠지지 않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도당 저널리즘은 기자가 특정 정당 또는 부류의 정치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내부자 그룹(insider group)의 일원이 돼 기사를 쓰는 것을 뜻합니다.


데이비드 브로더 기자가 미국 워싱턴DC의 워싱턴포스트 편집국 안에서 일하고 있다./Broder Family 제공

데이비드 브로더 기자가 미국 워싱턴DC의 워싱턴포스트 편집국 안에서 일하고 있다./Broder Family 제공



데이비드 브로더가 1980년에 낸 저서

데이비드 브로더가 1980년에 낸 저서


그는 “신문기자가 취재원과 한 편이 될 때, 언론은 시민들로부터 멀어진다”며 “많은 정치부 기자들이 정치 권력의 내부자가 되려 안달하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브로더는 “기자는 참여자(player)가 아니라 영원한 구경꾼(outsider)이다. 개인이나 단체 또는 국가가 위대한 성취의 순간이나 비극적인 사건을 맞았을 때에도, 기자는 관전자(觀戰者)이다. 인간의 최초 달 착륙 장면을 중계한 월터 크롱카이트와 히로시마 원폭투하의 비극을 묘사한 존 허시는 가장 냉정하고 절제된 행동을 보여준 모범적인 기자들이다”고 말했습니다.

◇“기자는 참여자 아니라 영원한 구경꾼”

브로더 자신도 정치권으로부터 수차례 대변인이나 고위 관료 제안을 받았지만 매번 거부하고 언론인으로 남았습니다. 브로더는 “정치에 발을 들여 놓아서는 안되는 직업이 있다면, 신문기자가 최우선이며, TV 뉴스 앵커맨은 신문기자에 비해 두 배나 더 정치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 정당원이 되려고 그가 지닌 신뢰성을 사용하는 것은 기자로서 쌓아온 신뢰를 타락시키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데이비드 브로더가 이상적인 언론인으로 예찬한 월터 크롱카이트. 그가  1969년 CBS 저녁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데이비드 브로더가 이상적인 언론인으로 예찬한 월터 크롱카이트. 그가 1969년 CBS 저녁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가차없고 짜증날 정도로 중립적’(relentlessly, irratatingly centrist)인 논조의 칼럼을 썼고, 공화·민주당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파 독립(independent)’으로 정치 성향을 등록했습니다. 브로더는 기사와 칼럼에 정치적 입장 반영을 봉쇄하기 위해 여러 선거에서 투표를 하지 않았습니다.

브로더는 술, 담배, 골프를 하지 않고 저녁이나 주말을 이용해 공부하고 연구했습니다. 철저한 시간관리로 그는 38세 때인 1967년 첫 저서를 시작으로 71세 때까지 8권의 저서를 냈습니다. 1968년 가을부터 1년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방문연구원 생활을 한 뒤 <The Party’s Over: The Failure of Politics in America>를 출간했습니다.

◇③평생 공부하며 더없이 겸손·검소하다

브로더는 예일대를 비롯해 모두 16개 대학으로부터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미국 의회정치 연구의 권위자인 베이커(Ross Baker) 럿거스대 교수는 “데이비드 브로더는 정치학자들보다 정치 분석을 더 잘하는 칼럼니스트”라고 말했습니다. 시카고대 정치연구소(Institute of Poltics)는 2017년 동문인 브로더의 공적(功績)을 기려 ‘언론과 압력 : 2017년의 정치 저널리즘’이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데이비드 브로더(앞줄 왼쪽)가 80회 생일을 맞아 2009년 6월 부인과 4명의 아들과 함께 찍은 가족 사진/Broder Family 제공

데이비드 브로더(앞줄 왼쪽)가 80회 생일을 맞아 2009년 6월 부인과 4명의 아들과 함께 찍은 가족 사진/Broder Family 제공


프로야구팀 시카고 컵스(Chicago Cubs) 열렬한 팬인 브로더는 야구와 테니스 외에는 오로지 정치부 기자라는 업(業)에 몰입했습니다. 그의 4남인 마이크(Mike) 브로더는 “아버지는 많은 신문과 잡지, 저널, 컨그레셔널 레코드(Congressional Record·의회 의사록) 등을 집으로 갖고 오거나 매일 배달받았다. 방대한 양의 정보를 읽고 소화하는 게 일상이었다”고 했습니다.

매일 일반 시민·근로자들과 같이 버스를 타고 출퇴근했고 오래된 자켓과 가벼운 플란넬 천으로 된 셔츠를 입고 다녔습니다. WP 정치부의 후배인 댄 발즈(Dan Balz) 선임기자는 “브로더는 TV카메라 앞에서 멋진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도,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올리브 가든(Olive Garden) 같은 서민 식당을 즐겨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브로더가 하루에 19시간, 20시간씩 일한 적이 많았다. 그는 밤샘 후에도 아침방송에 출연하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버스에 몸을 실었다”고 했습니다. 74세였던 2003년 미국 연방하원에서 ‘처방 약(prescription-drug) 법안’ 투표가 지연돼 오전 6시 이뤄졌을 때, 브로더는 혼자 복도와 기자실에 머물며 현장을 지켰습니다. 그는 몇 시간 쉬려고 집에 갔다가 오전 10시쯤 회사에 나와 당시 상황을 기사로 썼습니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연방의사당내 하원 기자실(house press gallery) 모습/house.gov

미국 워싱턴DC 소재 연방의사당내 하원 기자실(house press gallery) 모습/house.gov


그러면서도 브로더는 매년 연말에 그해에 쓴 기사와 칼럼 가운데 실수 또는 부족했던 부분을 반성하는 ‘실수 칼럼(Goofs Column)’을 실었습니다. 2002년 12월 22일자 ‘실수 칼럼’에서는 “틀린 부분이 있어 고쳤는데 정정한 내용이 또 틀려서 다시 수정하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며 미안해 했습니다.

◇미국 언론·언론인의 정치 보도 수준 높여

정치 담당 기자라는 본업(本業)에 투철했던 그는 허세(虛勢)·허식(虛飾)·편파(偏頗)를 배격했습니다. ‘성직자(聖職者)와 같은 정치부 기자’, ‘브로더리즘(Broderism)’이란 표현은 그래서 생겼습니다.

브로더가 남긴 유산은 미국 언론계의 선진화·전문화를 더 높이는 자산과 전통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주요 매체 정치부 기자 가운데 정계(政界)로 투신한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뭅니다. NYT·WP·월스트리트저널(WSJ) 같은 일류 매체 정치부 기자라면 단독 저서를 몇 권 내는 게 기본이라는 관념이 정착돼 있습니다.


2011년 4월 5일 미국 워싱턴DC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 데이비드 브로더 영결식 안내장/Broder Family

2011년 4월 5일 미국 워싱턴DC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 데이비드 브로더 영결식 안내장/Broder Family


브로더 같은 선구(先驅)적인 기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미국 언론은 세계 최고의 품질과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행적은 한국 언론계에도 경종(警鐘)과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습니다. K-컬쳐, K-스포츠에 이어 K-저널리즘과 K-정치가 꽃 피려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말입니다.

◇송상근, “사회 보다 언론이 먼저 정치 보도 방식 성찰하고 고쳐야”

송상근 이화여대 저널리즘교육원 특임교수는 “시대와 환경이 달라도 정치 보도의 중심은 유권자여야 한다”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 유권자 집을 일일이 찾지 않고 온라인, 메타버스 공간에서 유권자를 더 많이, 더 빨리, 더 오래 만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 회원인 송 교수는 2022년 출간된 연구서적 <한국의 정치 보도>에서 브로더의 취재 기법을 분석했습니다. 다음은 송 교수와의 일문일답입니다.


송상근 이화여대 저널리즘교육원 특임교수

송상근 이화여대 저널리즘교육원 특임교수


- 데이비드 브로더 식(式)의 정치 보도가 왜 필요한가?

“한국 언론이 타성적으로 하고 있는 정치권과 정치인 중심 보도로 한국 언론은 국민과 멀어졌고, 언론과 기자들은 본연의 역할을 잊어버렸다. 경제와 스포츠 뉴스의 중심에 소비자와 팬을 놓듯이, 정치 뉴스의 중심도 유권자여야 한다. 권력과 정당, 정치인이 자신들을 위한 도구(道具)로 언론을 이용하고 이에 언론이 동조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 어떻게 가능한가?

“국민들이 정확한 정보를 접하도록 해야 의제(議題) 형성이 제대로 되고 합리적 토론과 선택이 가능하다. 현재처럼 지지 후보나 찬반을 묻는 식으로는 한계가 많다. 국내 여론조사는 너무 많고 업체의 신뢰도가 낮고 정치적 의도마저 엿보인다. 그런 점에서 유권자들을 심층면접 취재하는 브로더식(式) 접근은 의미가 크다.”


데이비드 브로더가 독립적으로 취재하고 비판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왼쪽)과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 모습. 1970년대 초반 모습/조선일보DB

데이비드 브로더가 독립적으로 취재하고 비판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왼쪽)과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 모습. 1970년대 초반 모습/조선일보DB


- 브로더로부터 한국 기자들이 배워야 할 점이라면?

“취재원으로부터의 독립, 엄밀한 사실 확인, 겸손함을 꼽고 싶다. 브로더는 닉슨과 독대해 부통령 후보를 특종했지만 그가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다고 칼럼에서 질타했다. 키신저와의 대화에서 메모를 못하게 하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는 자사의 후배기자를 위해 사례를 보충취재하러 현장에 다시 갔고 여론조사 결과를 타사 후배에게 알려주는 등 인간적으로 겸손했다.”

- 정치 보도를 개선하려면 사회와 언론인 중 누가 먼저 변해야 하나?

“개인의 노력이 구조의 문제를 모두, 바로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언론보다 사회가 먼저 변하고, 기자보다 취재원이 더 노력하기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언론이 자신들의 취재방식과 관행을 성찰하면서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 먼저 바꾸는 게 당연하다. 그래야 도덕적 권위도 생긴다.”


한국 언론의 선진화에 관심 많은 언론학자들의 모임인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가 2022년 1월 발간한 책.

한국 언론의 선진화에 관심 많은 언론학자들의 모임인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가 2022년 1월 발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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