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의달의 모닝라이브] 우크라 전쟁 현장 발로 뛰는...정철환 조선일보 유럽특파원에 듣다
송의달 에디터
입력 2022.05.31 06:30
조선닷컴
올해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가장 현장 가까이에서 밀착 취재하고 있는 정철환(47) 조선일보 파리 주재 유럽특파원(국제부 차장)의 활약이 한국 언론인 가운데 단연 돋보입니다.
2022년 5월 하순 우크라이나 르비우 르포차 방문한 르비우역에 정차한 폴란드 프레미실-우크라이나 키이우 왕복 열차 앞에 선 정철환 특파원/정철환
정 특파원은 전쟁이 터지기 직전인 올 1월, 한국 언론 가운데 최초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Kyjiv·러시아 발음으로는 키예프)에 들어가 현지 상황을 취재했어요. 우크라이나 침공 당일인 2월 24일 국내 언론 중 유일하게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접경 현장 취재를 했지요. 올 3월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폴란드 방문을 좇아 취재했고, 4월 말에는 러시아군이 진주한 몰도바내 친(親)러시아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 르포를 했습니다. 이번 달에는 13일부터 17일까지 대한민국 외교부 허가를 받아 우크라이나 르비우에 가 전쟁 난민들의 귀국 열차 및 야간 공습 르포 등을 했어요.
◇만 20년째 기자...작년 10월부터 파리 상주하며 유럽 취재
우크라이나 지도
“미사일이나 포탄이 터지지도 않는 곳 취재가 뭐 대단한 일?”이라며 반론을 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2007년 8월부터 ‘여권법’에 따라 취재 기자들에게도 여행금지제도를 시행하는 바람에 현재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취재하는 1000여명의 외신 가운데 한국 취재진은 1 명도 없어요.
외교부의 허가 절차가 최소 2주일 이상 걸리다 보니, 허가 받고 현장 가면 상황은 종료됐구요. 정 특파원은 이런 법규를 준수하면서도 우크라나이 전쟁 현장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 생생한 소식을 전하고 있어요. 세 차례 국제전화와 이메일, 슬랙 등으로 그의 활동 내용과 생각을 들어봤어요.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어요.
“2002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해 2006년 조선일보로 옮겨 올해로 만 20년째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사회부 경찰기자와 사회정책부를 거쳐 주로 경제부, 산업부에서 일했다. 2021년 10월 말 조선일보 유럽 특파원으로 프랑스 파리(Paris) 상주(常駐) 근무를 시작했고, 그 직전인 2020년 12월부터 조선일보 주말 프리미엄 경제섹션인 위클리비즈(Weekly Biz·당시 민트) 편집장으로 11개월간 일했다.”
파리에 나오기 전 특파원 준비는 어떻게 했나?
“2016년 8월부터 다음해 8월까지 만 1년간 프랑스 중남부의 리옹(Lyon)에서 연수를 했다. 이때 유럽 문화와 생활에 익숙해졌다. 리옹은 파리와 비교해 집세가 절반 수준이고 물가가 쌌다. 외국인이 적고 덜 번잡한데다 스위스·이탈리아 등 다른 국가로의 접근성도 좋았다.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유럽 각국의 정치·경제·문화와 삶의 방식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인구 기준 세 번째 큰 도시인 리옹. 국제형사경찰기구 인터폴(Interpol)이 리옹에 본부를 두고 있다.
하루 일과를 소개한다면?
“대체로 한국 시간에 맞춰 생활한다고 보면 된다. 파리 시간 기준으로 새벽에 기사 발제 및 취재 보고를 하고, 오전 중 기사 마감을 한다. 서울 기준으로 시내판용 기사를 작업해야 할 경우 기사 마감이 파리 시간으로 오후 4~5시까지 계속 되기도 한다. 취재 및 기획 기사 준비는 점심, 저녁 시간과 오후 시간을 많이 활용한다.”
프랑스어 등 의사 소통에 불편은 없나?
“상대방이 영어 구사가 가능한 경우는 취재에 전혀 문제가 없다. 상대방이 영어를 못하는 경우는 프랑스어나 독일어로 소통을 시도한다. 나의 프랑스어는 TCF(프랑스어능력평가) 기준 중상 레벨(B2)이다. 그러나 듣고 말하는 것은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독일어는 고교 때 배운 것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어서 기초적 의사 표현과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
◇“국제정치, 유럽 정치·외교사 공부가 도움”
정철환 특파원은 서울대 외교학과 94학번으로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했어요. 그는 “파리 주재 유럽 특파원은 이 지역 30개 이상 국가를 담당하며 다양한 이슈를 다룬다. 지금 나의 취재 영역은 구(舊)소련 지역과 아프리카, 중동을 포함한다. 대학 시절 전공 과정의 일환으로 유럽 정치사·외교사 및 서구 사상과 정치 철학에 대한 공부를 한 것이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특파원으로서 주력하는 목표라면?
“유럽의 다양한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고, 독자들에게 정확하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다. 한국과 유럽과의 교류는 많이 확대됐지만 한국인들의 유럽에 대한 이해는 아직 그다지 높지 못하다. 유럽의 앞선 경험을 통해 한국 사회가 앞으로 겪게 될 일을 한 발 앞서 조망하고, 대안 또는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 제시하는 일도 해보고 싶다.”
정철환 특파원이 2022년 5월 하순 우크라이나 르비우의 한 식당에서 올가 피쿨라 마리우폴 시의회 부의장을 만나 취재하고 있다./정철환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 중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실제 전투 행위가 벌어지는 곳에는 한국 외교부가 방문 허가 자체를 내주지 않아 그렇게 위험한 순간이 있다고는 하기 어렵다. 하지만 올 5월에 닷새 동안 내가 취재한 르비우 같은 후방 지역도 지속적으로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 등이 이뤄지고 있더라. 공습 경보가 자주 울려서 취재 중에 ‘혹시나’ 하는 불안과 걱정이 늘 상존했다. 특히 새벽에 공습 경보가 몇번 울리면 하루종일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는 트란스니스트리아 취재 과정에서 러시아군 검문에 걸려 취조를 받았을 때가 가장 아찔했다. 그때는 실제로 억류당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이었다.”
◇‘47세 생일’ 기지로...구금 위기 탈출
정 특파원은 2022년 5월20일자 조선일보사 사보(社報) 기사에서 “러시아 국기(國旗)가 선명한 장갑차 앞에서 장전된 AK소총을 든 러시아군이 여권 검사를 하는데 ‘까닥 잘못하면 정말 어떻게 되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 긴박한 상황을 말했어요. 스마트폰으로 몰래 현장 사진을 찍으려다 발각돼 초소로 끌려 들어가 몸수색을 당했던 그는 “운좋게 그날이 내 47번째 생일이었다. 러시아 군인이 관광객이라는 내 주장을 믿지 않아 ‘오늘이 내 47세 생일이다. 더 나이 먹기 전에 특별한 경험을 하러 왔다’고 말하고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났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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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20일자 조선일보 사보에 실린 정철환 특파원 관련 기사
아찔한 순간을 무릅쓰고 열심인 이유는?
“기자의 일은 항상 위험을 동반한다. 그러나 아무리 위험해도 그걸 감수하고 다양한 취재와 기사 작성 노력을 하는 게 직업인으로서 기자의 본분(本分)이라고 믿는다. 취재 과정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취재가 큰 위험을 내포할 수도 있고, 그 반대 경우도 있다. 분명한 것은 안전 지대(safe zone)에만 머물면 뻔한 이야기가 되며, 그렇게 쓴 기사는 아무 매력이 없어 누구도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취재에서 느끼는 바라면?
“공습 경보가 거의 매일 이뤄지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 또 피난 생활을 정리하고 아직도 포탄이 난무하는 고국행 발걸음을 옮기는 우크라이나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끈질김’ 같은 것을 느꼈다. 생명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도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에게서 70여년전 우리 할아버지할머니 세대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 경계의 러시아군 검문 초소/정철환
어떤 마음으로 ‘기자’ 생활을 하고 있나?
“함께 일했던 기자 선배 한 분이 관(官)으로 자리를 옮긴 뒤 ‘내가 기자를 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취재를 해 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알고 보니 실제 벌어지는 일의 5%도 안되더라’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사실(事實)’ 또는 ‘진실(眞實)’이라는 단어 앞에 오만하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일하려 노력하고 있다.”
◇“서독내 동독 간첩 활동 취재해 보고 싶어”
유럽 특파원으로서 꼭 취재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독일 통일 전에 서독에서 활동했던 동독 간첩들을 인터뷰하고 동독의 대(對)서독 공작 활동에 대해 자세히 취재해 보고 싶다. 하지만 상당한 시간과 공이 드는 작업이라 실현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저서가 있나?
“매일 빠듯한 삶을 살다보니 아직까지 단독저서를 내진 못했다. 조선일보의 주말 프리미엄 경제섹션인 위클리비즈 기자로 근무할 때 쓴 기사들을 선후배 동료의 기사들과 함께 묶어 낸 ‘위클리비즈i’와 ‘위클리비즈 인사이트’가 각각 있다.”
단행본 '위클리비즈 i'
단행본 '위클리비즈 인사이트'
기억에 남거나 뿌듯한 기사를 꼽는다면?
“위클리비즈 시절 한 리더십 컨설팅 구루인 마셜 골드스미스(Marshall Goldsmith) 박사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출국장 벤치에서 40분간 만나면서 거의 2시간 분량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빠르고 급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는데도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영감을 주는 내용이라 따로 정리할 필요 없이 쉽게 기사를 썼다. 구글의 시장 독점 문제, 지도 데이터 반출 문제 등에 대한 보도도 기억에 남는다. 외국 IT 대기업에 대한 우리나라의 규제 정책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정 특파원은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기자와 팀장으로 근무하면서 “마르쿠스 발렌베리 SEB 회장, 리오넬 조스팽 전 프랑스 총리, 제이미 다이먼 전 JP모건 회장, 스티븐 로치 모간스탠리 아시아 회장,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자산운용 회장, 제라르드 클라이스터리 전 필립스 회장, 스티브 앨리스 베인앤컴퍼니 전 CEO, 존 아이켄베리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리더십컨설턴트 마셜 골드스미스, 건축가 안도 다다오 등과 심층 인터뷰를 했다”고 밝혔어요.
2011년 2월 12일자 위클리비즈 1면 머릿기사로 실린 정철환 특파원의 마샬 골드스미스 박사 인터뷰 기사
앞으로 꿈은?
“당장은 유럽 특파원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일이다. 장기적으로는 추락해 있는 한국 신문과 언론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일을 해보고 싶다.”
◇“한국 신문의 位相 끌어 올리고 싶어”
유럽 특파원이 되려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유럽특파원은 대단히 도전적이고(challenging) 많은 것이 요구되는(demanding) 직종이다. 그런 만큼 같은 부서 선후배 동료들은 물론 함께 지내는 가족의 전폭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언어 실력도 중요하다. 외국어로 현지인과 소통하거나 자료를 읽고 분석하는데 자신감이 없거나 두려움을 느낀다면, 취재와 활동의 폭이 급격하게 제한된다. 현장에 투입되면 무척 바빠 외국어 실력을 키우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한다. 미리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현재 파리에 특파원을 두고 있는 한국 언론사는?
“올해 초까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연합뉴스, KBS 등 4개사가 파리에 상주 특파원을 두고 있었다. 10여년 전 중앙일보와 MBC를 포함한 8~9개 매체 시절에 비해 크게 줄었다. 하지만 최근 유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MBC와 SBS가 올해 하반기 특파원을 보낸다. 이렇게 되면 모두 6개 매체가 상주하게 된다.”
정 특파원은 “일본은 마이니치, 아사히, 요미우리, 닛케이 등 주요 신문사와 계열 방송사들이 파리는 물론 베를린, 브뤼셀, 로마, 모스크바 등에 특파원을 두고 있다. 특파원의 수는 지국(支局) 마다 다르지만 2명 이상을 두고 있는 곳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어요. ‘언론의 글로벌 투사력(投射力)’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간의 큰 격차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파리 에펠탑과 2024년 파리올림픽 로고/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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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달의 모닝라이브] 우크라 전쟁 현장 발로 뛰는...정철환 조선일보 유럽특파원에 듣다
입력 2022.05.31 06:30
조선닷컴
올해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가장 현장 가까이에서 밀착 취재하고 있는 정철환(47) 조선일보 파리 주재 유럽특파원(국제부 차장)의 활약이 한국 언론인 가운데 단연 돋보입니다.
2022년 5월 하순 우크라이나 르비우 르포차 방문한 르비우역에 정차한 폴란드 프레미실-우크라이나 키이우 왕복 열차 앞에 선 정철환 특파원/정철환
정 특파원은 전쟁이 터지기 직전인 올 1월, 한국 언론 가운데 최초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Kyjiv·러시아 발음으로는 키예프)에 들어가 현지 상황을 취재했어요. 우크라이나 침공 당일인 2월 24일 국내 언론 중 유일하게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접경 현장 취재를 했지요. 올 3월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폴란드 방문을 좇아 취재했고, 4월 말에는 러시아군이 진주한 몰도바내 친(親)러시아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 르포를 했습니다. 이번 달에는 13일부터 17일까지 대한민국 외교부 허가를 받아 우크라이나 르비우에 가 전쟁 난민들의 귀국 열차 및 야간 공습 르포 등을 했어요.
◇만 20년째 기자...작년 10월부터 파리 상주하며 유럽 취재
우크라이나 지도
“미사일이나 포탄이 터지지도 않는 곳 취재가 뭐 대단한 일?”이라며 반론을 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2007년 8월부터 ‘여권법’에 따라 취재 기자들에게도 여행금지제도를 시행하는 바람에 현재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취재하는 1000여명의 외신 가운데 한국 취재진은 1 명도 없어요.
외교부의 허가 절차가 최소 2주일 이상 걸리다 보니, 허가 받고 현장 가면 상황은 종료됐구요. 정 특파원은 이런 법규를 준수하면서도 우크라나이 전쟁 현장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 생생한 소식을 전하고 있어요. 세 차례 국제전화와 이메일, 슬랙 등으로 그의 활동 내용과 생각을 들어봤어요.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어요.
“2002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해 2006년 조선일보로 옮겨 올해로 만 20년째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사회부 경찰기자와 사회정책부를 거쳐 주로 경제부, 산업부에서 일했다. 2021년 10월 말 조선일보 유럽 특파원으로 프랑스 파리(Paris) 상주(常駐) 근무를 시작했고, 그 직전인 2020년 12월부터 조선일보 주말 프리미엄 경제섹션인 위클리비즈(Weekly Biz·당시 민트) 편집장으로 11개월간 일했다.”
파리에 나오기 전 특파원 준비는 어떻게 했나?
“2016년 8월부터 다음해 8월까지 만 1년간 프랑스 중남부의 리옹(Lyon)에서 연수를 했다. 이때 유럽 문화와 생활에 익숙해졌다. 리옹은 파리와 비교해 집세가 절반 수준이고 물가가 쌌다. 외국인이 적고 덜 번잡한데다 스위스·이탈리아 등 다른 국가로의 접근성도 좋았다.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유럽 각국의 정치·경제·문화와 삶의 방식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인구 기준 세 번째 큰 도시인 리옹. 국제형사경찰기구 인터폴(Interpol)이 리옹에 본부를 두고 있다.
하루 일과를 소개한다면?
“대체로 한국 시간에 맞춰 생활한다고 보면 된다. 파리 시간 기준으로 새벽에 기사 발제 및 취재 보고를 하고, 오전 중 기사 마감을 한다. 서울 기준으로 시내판용 기사를 작업해야 할 경우 기사 마감이 파리 시간으로 오후 4~5시까지 계속 되기도 한다. 취재 및 기획 기사 준비는 점심, 저녁 시간과 오후 시간을 많이 활용한다.”
프랑스어 등 의사 소통에 불편은 없나?
“상대방이 영어 구사가 가능한 경우는 취재에 전혀 문제가 없다. 상대방이 영어를 못하는 경우는 프랑스어나 독일어로 소통을 시도한다. 나의 프랑스어는 TCF(프랑스어능력평가) 기준 중상 레벨(B2)이다. 그러나 듣고 말하는 것은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독일어는 고교 때 배운 것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어서 기초적 의사 표현과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
◇“국제정치, 유럽 정치·외교사 공부가 도움”
정철환 특파원은 서울대 외교학과 94학번으로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했어요. 그는 “파리 주재 유럽 특파원은 이 지역 30개 이상 국가를 담당하며 다양한 이슈를 다룬다. 지금 나의 취재 영역은 구(舊)소련 지역과 아프리카, 중동을 포함한다. 대학 시절 전공 과정의 일환으로 유럽 정치사·외교사 및 서구 사상과 정치 철학에 대한 공부를 한 것이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특파원으로서 주력하는 목표라면?
“유럽의 다양한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고, 독자들에게 정확하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다. 한국과 유럽과의 교류는 많이 확대됐지만 한국인들의 유럽에 대한 이해는 아직 그다지 높지 못하다. 유럽의 앞선 경험을 통해 한국 사회가 앞으로 겪게 될 일을 한 발 앞서 조망하고, 대안 또는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 제시하는 일도 해보고 싶다.”
정철환 특파원이 2022년 5월 하순 우크라이나 르비우의 한 식당에서 올가 피쿨라 마리우폴 시의회 부의장을 만나 취재하고 있다./정철환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 중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실제 전투 행위가 벌어지는 곳에는 한국 외교부가 방문 허가 자체를 내주지 않아 그렇게 위험한 순간이 있다고는 하기 어렵다. 하지만 올 5월에 닷새 동안 내가 취재한 르비우 같은 후방 지역도 지속적으로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 등이 이뤄지고 있더라. 공습 경보가 자주 울려서 취재 중에 ‘혹시나’ 하는 불안과 걱정이 늘 상존했다. 특히 새벽에 공습 경보가 몇번 울리면 하루종일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는 트란스니스트리아 취재 과정에서 러시아군 검문에 걸려 취조를 받았을 때가 가장 아찔했다. 그때는 실제로 억류당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이었다.”
◇‘47세 생일’ 기지로...구금 위기 탈출
정 특파원은 2022년 5월20일자 조선일보사 사보(社報) 기사에서 “러시아 국기(國旗)가 선명한 장갑차 앞에서 장전된 AK소총을 든 러시아군이 여권 검사를 하는데 ‘까닥 잘못하면 정말 어떻게 되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 긴박한 상황을 말했어요. 스마트폰으로 몰래 현장 사진을 찍으려다 발각돼 초소로 끌려 들어가 몸수색을 당했던 그는 “운좋게 그날이 내 47번째 생일이었다. 러시아 군인이 관광객이라는 내 주장을 믿지 않아 ‘오늘이 내 47세 생일이다. 더 나이 먹기 전에 특별한 경험을 하러 왔다’고 말하고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났다”고 했어요.
2022년 5월20일자 조선일보 사보에 실린 정철환 특파원 관련 기사
아찔한 순간을 무릅쓰고 열심인 이유는?
“기자의 일은 항상 위험을 동반한다. 그러나 아무리 위험해도 그걸 감수하고 다양한 취재와 기사 작성 노력을 하는 게 직업인으로서 기자의 본분(本分)이라고 믿는다. 취재 과정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취재가 큰 위험을 내포할 수도 있고, 그 반대 경우도 있다. 분명한 것은 안전 지대(safe zone)에만 머물면 뻔한 이야기가 되며, 그렇게 쓴 기사는 아무 매력이 없어 누구도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취재에서 느끼는 바라면?
“공습 경보가 거의 매일 이뤄지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 또 피난 생활을 정리하고 아직도 포탄이 난무하는 고국행 발걸음을 옮기는 우크라이나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끈질김’ 같은 것을 느꼈다. 생명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도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에게서 70여년전 우리 할아버지할머니 세대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 경계의 러시아군 검문 초소/정철환
어떤 마음으로 ‘기자’ 생활을 하고 있나?
“함께 일했던 기자 선배 한 분이 관(官)으로 자리를 옮긴 뒤 ‘내가 기자를 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취재를 해 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알고 보니 실제 벌어지는 일의 5%도 안되더라’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사실(事實)’ 또는 ‘진실(眞實)’이라는 단어 앞에 오만하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일하려 노력하고 있다.”
◇“서독내 동독 간첩 활동 취재해 보고 싶어”
유럽 특파원으로서 꼭 취재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독일 통일 전에 서독에서 활동했던 동독 간첩들을 인터뷰하고 동독의 대(對)서독 공작 활동에 대해 자세히 취재해 보고 싶다. 하지만 상당한 시간과 공이 드는 작업이라 실현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저서가 있나?
“매일 빠듯한 삶을 살다보니 아직까지 단독저서를 내진 못했다. 조선일보의 주말 프리미엄 경제섹션인 위클리비즈 기자로 근무할 때 쓴 기사들을 선후배 동료의 기사들과 함께 묶어 낸 ‘위클리비즈i’와 ‘위클리비즈 인사이트’가 각각 있다.”
단행본 '위클리비즈 i'
단행본 '위클리비즈 인사이트'
기억에 남거나 뿌듯한 기사를 꼽는다면?
“위클리비즈 시절 한 리더십 컨설팅 구루인 마셜 골드스미스(Marshall Goldsmith) 박사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출국장 벤치에서 40분간 만나면서 거의 2시간 분량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빠르고 급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는데도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영감을 주는 내용이라 따로 정리할 필요 없이 쉽게 기사를 썼다. 구글의 시장 독점 문제, 지도 데이터 반출 문제 등에 대한 보도도 기억에 남는다. 외국 IT 대기업에 대한 우리나라의 규제 정책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정 특파원은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기자와 팀장으로 근무하면서 “마르쿠스 발렌베리 SEB 회장, 리오넬 조스팽 전 프랑스 총리, 제이미 다이먼 전 JP모건 회장, 스티븐 로치 모간스탠리 아시아 회장,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자산운용 회장, 제라르드 클라이스터리 전 필립스 회장, 스티브 앨리스 베인앤컴퍼니 전 CEO, 존 아이켄베리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리더십컨설턴트 마셜 골드스미스, 건축가 안도 다다오 등과 심층 인터뷰를 했다”고 밝혔어요.
2011년 2월 12일자 위클리비즈 1면 머릿기사로 실린 정철환 특파원의 마샬 골드스미스 박사 인터뷰 기사
앞으로 꿈은?
“당장은 유럽 특파원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일이다. 장기적으로는 추락해 있는 한국 신문과 언론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일을 해보고 싶다.”
◇“한국 신문의 位相 끌어 올리고 싶어”
유럽 특파원이 되려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유럽특파원은 대단히 도전적이고(challenging) 많은 것이 요구되는(demanding) 직종이다. 그런 만큼 같은 부서 선후배 동료들은 물론 함께 지내는 가족의 전폭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언어 실력도 중요하다. 외국어로 현지인과 소통하거나 자료를 읽고 분석하는데 자신감이 없거나 두려움을 느낀다면, 취재와 활동의 폭이 급격하게 제한된다. 현장에 투입되면 무척 바빠 외국어 실력을 키우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한다. 미리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현재 파리에 특파원을 두고 있는 한국 언론사는?
“올해 초까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연합뉴스, KBS 등 4개사가 파리에 상주 특파원을 두고 있었다. 10여년 전 중앙일보와 MBC를 포함한 8~9개 매체 시절에 비해 크게 줄었다. 하지만 최근 유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MBC와 SBS가 올해 하반기 특파원을 보낸다. 이렇게 되면 모두 6개 매체가 상주하게 된다.”
정 특파원은 “일본은 마이니치, 아사히, 요미우리, 닛케이 등 주요 신문사와 계열 방송사들이 파리는 물론 베를린, 브뤼셀, 로마, 모스크바 등에 특파원을 두고 있다. 특파원의 수는 지국(支局) 마다 다르지만 2명 이상을 두고 있는 곳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어요. ‘언론의 글로벌 투사력(投射力)’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간의 큰 격차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파리 에펠탑과 2024년 파리올림픽 로고/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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